상족암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으로 빚은 놀라운 판타지《공룡 신발》
남해의 맑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책처럼 켜켜이 쌓인 바위 절편들 위에 백악기, 쥐라기 공룡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곳. 여기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 411호로 지정된 고성 상족암 군립공원이다. 상족암이라는 이름은, 산의 전면이 층층단애로 되어 있고, 암벽 깊숙이 동서로 되돌아들며 암굴이 뚫어져 있는 모양이 밥상다리 같다고 하여 상족(床足), 여러 개의 다리 모양 같다 하여 쌍족(雙足) 또는 ‘쌍발’이라고 불리는 데서 유래한다. 공룡 발자국 유적지를 비롯하여 선녀탕이라고 불리는 바위샘이며, 바위굴은 보는 사람에게 원시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커다란 공룡들이 너르면서도 아늑한 느낌의 이 남해 바다를 놀이터 삼아 뛰놀았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쥐라기에서 온 아기 공룡 ‘슈노’와 상처 입은 아이 ‘창하’, 친구 되다!
작가 김하늬는 이 책 《공룡 신발》에서 상족암이 선물한 그 상상력에 판타지의 옷을 입힌다. 바로 쥐라기 시대의 목이 길고 순한 초식공룡 슈노사우르스와 아빠 회사의 부도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중산층 아이 창하를 친구로 만든다. 둘은 같은 아픔을 갖고 있다. 부모님과 떨어졌고, 갑작스럽고 피할 수 없는 재난을 맞았고, 그리고 둘 다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슈노는 창하의 분신이며, 엄마 아빠를 만나서 지난날처럼 살아가고 싶은 창하의 소망이 빚어낸 판타지이기도 하다.
작가 김하늬는 섬세한 감성과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동화를 짓는다. 우리나라 어린이문학에서 판타지 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한 작품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김하늬 작가의 《공룡 신발》은 현실과 판타지 세계가 이음새 없이 세련되게 만나는 점이 특히 돋보인다.
일러스트레이터 장선환은 이 작품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실제로 경남 고성에 내려가 몽돌 해안이며 공룡 박물관 내부 등을 샅샅이 취재하고 자료를 조사했다. 실제로 이곳을 가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고성의 매력을 얼마나 잘 잡아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감성적인 스케치 선과 투명하고 서정적인 수채화 채색은 아픔을 가진 쓸쓸한 창하의 마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잘 보여준다.
줄거리
창하는 공룡 박물관에서 일하는 외삼촌을 만나러 박물관에 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이 내려와 출입문을 부수고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갔음을 알게 된다. 박물관 둘레 여기저기에 큰 물웅덩이를 만들 정도로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이 짐승을, 사람들은 멧돼지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박물관 아래쪽 몽돌이 펼쳐진 바닷가에 내려온 창하는 그곳에서 같은 반인 상묵이 패거리를 만난다. 상묵이는 힘으로 아이들을 제멋대로 부리려 하고, 창하를 서울에서 온 아이라고 대놓고 따돌린다. 창하는 그런 상묵이가 욕심꾸러기 공룡 티라노사우루스 같다고 생각한다.
창하는 아빠의 사업이 기울면서 외삼촌 댁에 내려와 살고 있다. 아빠는 지금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엄마는 어딘가에서 식당 일을 하고 있다. 외삼촌 댁에는 창하보다 어린 여동생 정하가 있다. 단발머리가 귀여운 정하는 상묵이랑도 친해서 상묵이를 ‘오빠야’라고 부른다. 창하는 그것이 또 싫고 괘씸하다.
이곳 아이들은 바닷가에 남아 있는 공룡 발자국 화석 찾는 놀이를 좋아한다. 발자국을 찾아서 하나씩 자기 것이라고 이름 붙이고 다른 친구들은 얼씬도 못하게 한다. 창하도 어느 날 물이 맑은 선녀탕에서 정신없이 공룡 발자국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 벗어 놓은 신발이 감쪽같이 없어진다. 분명 상묵이가 한 짓이다. 아빠는 회사가 부도 날 줄 알면서도, 비싼 메이커의 운동화를 창하에게 사 주었다.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아빠가 그렇게 사 준 것이기에 창하에게는 너무도 귀중한 것이었는데…….
창하는 그 운동화 때문에 외삼촌과 한바탕 싸우고 상족암으로 달려온다. 책이 쌓인 듯 바위가 켜켜이 쌓인 바위굴 안에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창하의 손이 닿은 바위책 하나가 스스르 빠져 나오더니 거기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것은 아기 공룡이었다. 공룡은 풍선처럼 부풀어 커진다. 초식공룡인 슈노사우루스였다. 슈노는 창하에게, 지금은 바다가 된 상족암에 남은 자기 신발(발자국)을 보여준다. 그 자리는 원래 슈노가 엄마와 놀던 호숫가였다. 슈노는 박물관에 전시된 엄마 화석을 만나기 위해 그 먼 시간을 뚫고 나왔던 것이다. 박물관 유리를 깨고 벽을 흙투성이로 만든 건, 슈노가 엄마를 만나려고 그랬던 거다. 창하는 슈노를 도와 엄마를 만나게 하려고 모험 아닌 모험을 한다.
큰 소망을 이룬 슈노는 바위굴로 돌아가고 둘은 가슴 아픈 이별을 해야만 한다. 그러나 창하도 슈노처럼 자기만의 귀한 신발을 되찾는다. 그보다 더욱 귀중한 가족들의 사랑까지도…….
작가 소개
지은이 김하늬
해인사가 있던 마을에서 태어나 얼마전 창덕궁 옆으로 이사 왔습니다. 이제껏 열세 번도 더 이사를 다니고 여러 가지 일을 해 보았지요. 그 모든 것이 창작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며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2004년 〈무지개 다리를 타고 온 소년〉으로 ‘황금펜 아동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늪》, 《속담왕 태백이의 산골 유학기》가 있어요.
이메일 주소는 charm56@hanmail.net입니다.
그린이 장선환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와 회화과에서 공부했습니다.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화가’라고 불릴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홈페이지 www.fartzzang.com는 다양한 그림을 담는 보물 창고랍니다. 그린 책으로 《비는 어디서 왔을까?》, 《심술쟁이 우리 할머니》, 《게임의 비밀》, 《좋아한다 싫어한다》, 《또 한번의 전학》, 《외로운 지미》, 《최척전. 김영철전》, 《유충렬전》, 《울면 안돼!》. 《박치기왕과 울기대장》, 《형 모래모치한테 인사해》, 《달려라,달리》, 《초승달가족》, 《그림이 있는 정원》, 《휠체어를 찾고 말겠어》 들이 있습니다.